Akamig

Development2022-03-25T10:54:06.463ZRev.2

40년된 구옥 리모델링기

5월 8일, 어버이날, 우리는 부케를 안고 할머니집으로 향하던 중 이모로부터 부고를 듣게 되었다. 폐암 말기였던 할머니께서는 더이상의 연명치료를 포기하시고 원하시던 대로 집에서 주무시다 돌아가셨다. 개인적으로 매우 '공업적'이었다고 평가하는 3일장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뒤 우린 유품정리를 하며 할머니가 남기신 이 집. 할아버지가 7-80년대부터 모으고 모아 집주인으로부터 한층씩, 한 호씩 구입하셨다는 이 집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 왈가왈부가 오갔다. 결론적으론 우리는 양도소득세 비과세 특례를 받기 위해 실거주 기간 최소 2년을 채우기로 했고, 우리는 송파구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갑작스레 결정하게 되었다.

그렇게 이사를 결정한 시점과 실제로 이사를 오는 시점간 3개월 텀이 있는 동안, 나는 주말에 엄마와 함께 유품과 집 정리를 도우러 할머니 집에 오곤 했고, 엄마가 할머니를 찾으며 우실때면 토닥이기도 했다. 미리 분명히 말해두자면 할머니께선 집의 단 한 끝이라도 바뀌는것을 싫어하셨다. 내가 전기 스위치와 외부등을 교체할때도 할머니가 처음 보는 역정을 내셨었다. 나중에는 좋아하시고 자랑까지 하셨지만. 노인의 현상유지 습성이리라.

아무튼 이후 이모가 다른 분이 사시던 1층, 엄마가 할머니가 사시던 2층에서 거주하게 되었는데, 난 펑펑울던 엄마가 생각나 당신께서 돌아가신 그자리에서 우리 엄마가 쉽게 눕고 먹고 할수 있을까? 싶기도 했고, 할머니의 현상유지 정책으로 낡아버린 나무루바와 벌레들, 배관 누수, 때낀 타일을 보며 우리가 여기서 2년을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으며, 나는 당시에 코로나로 좀이 쑤셔 프로그래밍 외에 다른 무언가가 하고 싶었기에 엄마에게 리모델링을 제안하게 되고, 몇번의 계획수정과 거듭된 엄마 설득 끝에 허가를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집 도면

그래서 우리의 첫 계획은 결과적으로 이러했다.

  • 천장/벽면 루바 전면 철거 → 석고보드 벽면 2ply, 천장 1ply로 시공
  • 조명 전면 교체 → LED 150W & 각방 50W
  • 문짝, 벽면 페인팅, 천장은 벽지 도배
  • 전체 창 방충망 시공 (대부분의 창문에 방충망이 없었다)
  • 화장실 수전/도기 전면 교체 → 변기,세면대, 샤워/세면수전, 휴지걸이 및 기타 걸이들
  • 타일 덧방 시공

초기 제시된 예산은 100만원 내외였다. 정말 자재비만 내놔도 타이트한 예산으로, 인건비를 고려한다면 절대 불가능한 예산이고, 특히 변기는 제일 싸구려를 하더라도 이런 예산을 맞출 수 없으리라고 장담한다. 아쉽게도 우리가 시공하려던 무렵은 원자재의 가격이 상승하던때로, 석고보드나 각목과 같은 기본 자재가 15~30%정도 비싼 상태에서 시작했다.

그래도 예산을 크게 공구, 욕실, 거실 3개로 나누고 석고보드 사용량 최적화 (최적화하지 않으면 애초에 남는 석고보드를 둘데가 없는 상황이니) 도기 원가 절감, 그리고 눈물나게도 타일 덧방의 포기를 통해 총 140~150만원대에서 시공을 완료했다. 후에 설명하겠지만, 타일 덧방을 하기에 조건이 몹시 좋지 않았다.

철거

파괴 뒤에 창조가 있는 법이다. 나는 그 말을 좋아한다. 스위치를 루바 위에 설치하면서 약하다는걸 알았던 나로서는 적당히 뜯어내면 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40년을 버텨온 나무벽은 생각보다는 튼튼하게 붙어있었다. 그러나 정체를 알 수 없는 간격의 가로목상에 실핀으로 박혀있었던걸 발견해 실핀 근처를 집중적으로 조진 결과 쉽게 뜯어낼 수 있었다. 누나도 나도 이 시기를 가장 행복한 과정으로 기억한다. 덥기 전이었고, 어릴 때부터 봐온 그 벽을 뜯어내는 과정에서 어떤 원초적인 해방감이 감돌았다.

엄마가 천장은 잘못 시공했다 무너지는걸 걱정해 멀쩡한거 건들지 말라, 건들려면 구조를 확인하고 건들이라는 요청을 했고 받아들여 한조각만 부숴 어떤 구조인지 보았으나 천장 위에 천장이 또 있는 이해하기 힘든 덧 천장 구조였다! 엄마의 말로는 중간에 물이 한번 새 얼룩이 지자 업자가 천장을 보수한적이 한번 있었다고 하던데, 이...이건....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천장 두번 철거하게 만든 그 업자를 저주하면서, 우리는 천장도 동일한 테크닉으로 제거했다.

이 과정에서 실 핀과 못을 빼내는데 지렛대로 사용한 두 십자 드라이버 친구들을 직관적으로 낄쭉이와 짧은거 라고 불렀는데, 나는 이 두 친구를 위해 한 문단을 남겨두고 싶을 정도로 아주 사랑한다. 공사하는 내내 불가능해보였던 모든 못들을 빼내줬으며, 그럼에도 이렇게 건재하게 남아있다.

벽체를 뜯어내며 우리는 이 집의 원래 구조에 대해 알아나가기 시작했다. 엄마가 말하길 원래 보일러실 앞은 화장실이었는데 할아버지가 방하나를 화장실로 재시공했다고 말했고, 과연 그런가 싶게 보일러실에선 사용되지 않는 배수구가, 벽 뒤엔 타일 벽이 드러났다. 그리고 원래 화장실등으로 배선되었을 전선은 알수 없는 방법으로 다락방으로 올라가 조명등으로 사용되었다.

사전조사시에는 450mm 간격으로 나있는 천장 반자대 일부는 사용하고, 기타 천정틀과 방해되는 가로 목상이라던가를 모두 제거하기로 결국에는 결정됐는데, 철거하는 내내 저건 이렇게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하나하나 철거하느라 좀 지쳤다. 다행히 이렇게 한 결과 부러지지 않은 쓸만한 폐목이 많이 남아 후공정에서 사용할 수 있었다.

목상 짜기

그러고 나면 이제 석고보드를 붙힐 목상을 설계해야한다. 내가 능력좋은 목수라면 대충 눈대중으로 해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므로 당연히 청사진이 필요했다.

하지만 난 컴퓨터 프로그래머 아닌가, 프로그래머가 늘 하는게 뭔가? 기술문서를 탐닉하는 것이다. 이런 중요한 부분에서 알지도 못하면서 마구 쑤시면 후회하게 되리라는것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전문적인 지식과 보편적 시공 방식을 알아내기 위해 설계와 시공측면에선 동네 아저씨가 아닌 미국/캐나다의 석고보드 제조사 CGC-UGC에서 발행한 Gypsum Construction Handbook을 참고했고, 한국의 환경에 맞는 시공을 위해 국토교통부 산하 건설기술정보시스템에서 표준 시방서들을 참고했다. 와, 듣기만 해도 믿을만 하다.

그래서 어떻게 설계하는지 알았으면 설계를 해야지. 캐드를 여러방면에서 시도해봤다. FreeCAD를 사용해보려고 했는데 이건 캐드가 아니고 거의 3D로 파이썬 스크립트를 돌리기 위한 GUI 프론트엔드에 가까운 물건이었고 “어 선생님 파이썬 아시니까 이거 쓰는거죠? 여기 모듈들 있음” 수준이었기 때문에 한쪽만 완성후 갈아치웠고, 블렌더를 거쳐 (최대한 빨리 완공해야 했으므로 블렌더 강의를 들을 시간이 없었다) 모두의 사랑받는 벡터 그래픽 툴(아님), 잉크스케이프를 사용하게 되었다.

일단 천장은 이미 짜져있는 반자대에 간격을 맞춰 반자대가 없는 쪽에 새로운 달대와 450mm 간격을 맞춰 설치해주기만 하면 되지만 이 또한 길이 계산이 필요했고, 벽은 문과 창문을 비껴 설계해야 하고, 특히 원래 사용하려던 문틀 몰딩 또한 철거과정에서 흠집이 심해 떼어냈기 때문에 문틀과 딱 맞아 떨어져야함은 말할것도 없었다.

방법은 단순하지만 되는 방법이다. 그냥 실측사이즈에 맞게 450mm * 천장높이mm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2310mm인가 그랬을거다) 네모 덩어리를 가지고 width, height를 조절해서 적당히 맞춰내 벽을 그려내고, 폭 14mm 직선 네모들을 이용해 각 벽에 몇 mm의 각목이 필요하고, 어떻게 잘라야 하는 지 표현해 냈다. 폭 14mm의 정 중앙 7mm씩 오프셋해야 두 석고보드가 하나의 석고보드를 공유할 수 있는데, 이 부분에서 실수하지 않도록 하는데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